갯배의 추억

갯배의 추억

11,269 2008.02.03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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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동기나 객지에서 이리저리 알게된 사람들을 우리 아바이 동네에 데려가면 탁트인 바다와 백사장, 방파제 위를 걷게하고, 금강산도 식후경, 냉면 한 그릇 먹이고 꼭 코스로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나룻배, 아니 우리식 말로 갯배를 한번 타보는 것이다. 무식한 방법, 손으로 끄는 무동력선이며 마치 건빵을 뒤집어 놓은 것 같기도 한 직사각형 목선이다.


갯배의 위치는 사방 청초호를 십리길 우회하여 만나는 호리병 같은 지점이 개 건너 중앙동 어판장 옆이다. 항구의 폭이 초창기에는 100여미터, 중반기에는 70여미터 이제는 더 짧아져 50미터도 안되지만 이 초창기 갯배에는 사연이 많다. 아니 아바이 마을하면 갯배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청호동과 조양동 사람들의 유일한 교통수단! 추억의 애물단지이다.


갯배는 손으로 당겨서 가는 배이다. 어린 기억으로는 6.25직후에는 로프로 되었지만 자꾸 닳아서 끊어지기에 나중에는 쇠줄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쇠줄은 이래저래 말썽이다. 100여미터 이상 늘어지다 보니 그 무게가 보통이 아니고 바닷물에 쉽게 부식이 되며 철사가 닳아 삐져나와 가시가 성성하다. 헌 것은 헌것대로 가시가 나서 말썽이고 새 밧줄은 구리스를 얼마나 처발라 놓는지 당기고 나면 손에 피, 아니면 구리스 범벅이다.그래도 청호동 억척 출신들은 거기에 대해서 민원이나 불평도 없다. 단지 이나마 다닐 수 있다는데 고마워할 뿐이다.


갯배는 청호초등학교 학생들이 졸업하면 중고등학교를 가는 시련의 입구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누가 미리 준비해서 학교 가는 학생이 몇이나 있는가?. 시계도 별로 없고, 시간을 알 수 있는 것은 깡통 라디오의 시보(時報)외에는 다 대충 아닌가? 그래도 등교시간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우리는 나룻배 옆에서 살았기 때문에 시계가 없어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면 대충 러시아워로 생각하고 준비해서 나간다. 이 나룻배는 두 번째 배와 세 번째 배 차이에서 학교지각이 결정된다. 그 때는 마치 필리핀 여객선 사람들처럼 정원보다 2, 3배로 탄다. 목숨걸고 탄다. 얼마나 타느냐고? 신발에 물이 차서 찰랑거릴 때까지....완전 초만원이다.(그때 경찰은 뭘 했는지 - 어민 파출소가 옆에 있어도 하도 그러니까 만성이 되었다.)

갯배는 혈기왕성을 보여주는 사춘기 젊은 학생들의 담력 시험장, 떠나가는 줄 알면서도 여학생들이 탔으니 뭔가 보여 주어야 하지 않는가? 달려 오면서 4-5미터를 공중으로 나는데 아차 실수하면 가방채로 꼴꾸닥 물속행차.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아바이 마을 출신 학생들은 다 수영을 할 줄을 안다는 사실.... 개구쟁이 시절에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벌거벗고 갯배에 올라서 바다로 다이빙을 하면서 솜씨를 보여 주던 곳이기도 하다.


갯배는 줄을 끌지 않으면 선배들이 뱁새 눈으로 눈총 받는 곳,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학교 옥상행이다, 좋아하는 여학생 옆으로 은근히 기어 들어가 딴청부리기 좋은 울렁 울렁 갯배, 그래서 선후배들이 착실히 대물림하며 끌던 갯배이다. 동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받침대 하나면 거의다 오르내릴 수 있다. 그러나 어릴 때는 그 턱이 어찌 그리 높아 보이는지, 특히 홍수가 져서 호수안의 수심이 높아질 때면 진풍경이다. 갯배에서는 사람들의 협동심이 들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턱이 너무 높거나 낮으면 원수지간에도 손을 잡아주어야 하고 좋아하는 연인 사이는 더 말할 것 없다. 일부러 손을 내어서도 잡아 주어야하는 인간의 풋풋한 사랑의 냄새가 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청호동 사람들이 왜 그리 중앙동을 사모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청호동에는 놀거리 볼거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속초의 바다경기가 좋은 때라서 술집도, 먹거리도 흥청거렸다. 중앙동에 가면 없는 것이 없다. 술, 여자, 특히 청호동 사람들은 왜 그리 영화를 좋아하는지 저녁 때는 갯배가 가라앉을 정도이다. 저녁 영화가 끝나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11시 갯배 마감시간 전에 타느라고 정신이 없다. 어쩌다가 쑈라도 하는 날이면 (당시 구봉서, 후라이보이, 서봉춘 등등) 아우성이다.

중앙동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하고 돈 떨어지면, 아니 통금에 걸릴 것 같으면 머리에 옷을 매고 헤엄쳐다니는 아바이 마을의 용사들을 보는가? 우리 매형도 누나를 좋아하는데 차편은 없고 배는 고함쳐도 오지 않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청호동을 건너와 자던 우리들을 깨우고 누나에게 사랑고백을 한 때도 있었다.


갯배는 여러 번의 사고도 있었다. 배에 부딪혀 일부 사람들이 죽는 일도 있었고 배의 스큐류에 걸려 질질 끌러가다가 내팽겨 쳐진 일도 있었다. 또 갯배는 아래 지방 주로 통영사람들이 원정 어업을 오면 곤욕을 치르는 곳이다. 통영 배는 밑바닥과 키가 붙어 있지 않고 따로 따로 논다. 속초 배들은 거의 다 밑바닥과 키가 일직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에 앞에만 쇠줄에 걸리지 않으면 통과한다. 그런데 통영 배는 앞을 통과해도 키에 걸리고 스큐류까지 부셔 먹는다. 조수가 심한 남쪽지방에서 지은 배들은 키가 길어야 배를 통제하기 때문에 그렇게 건조 되었다. 가끔 양양에서 파온 철광석을 실은 천여 톤의 화물선도 갯배의 적이다. 그 배가 올 때는 갯배는 아예 처음부터 출발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고집쓰고 출발하면 꼭 탈이 난다.


갯배는 “ហ” 모양의 갈구리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속초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별한다. 어느날 우리 아이들이 “아빠는 그렇게 줄을 잘 당겨요” 묻는다. “임아, 갯배 당기는 면허는 아바이 마을에서만 주는거야” 지금도 아바이 마을에 면허주는 곳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갯배는 엄마의 눈물을 실어 담고 다니던 배이다. 혼자 살면서 생선을 이고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고 니야까를 끌어 싣던 배, 마른 오징어를, 마른 명태를 실어 담았던 배, 그러기에 더욱 정이 든 배이다. 우리 엄마의 혼이 스며있다. 고향을 잃고 온 한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통로인 것이다. 아바이 마을 아이들이 시내 아이들을 물리치고 축구시합에서 재패하고 돌아오면 온 아바이 마을 사람들이 환영하는 퍼레이드의 첫 통로이다. 우리 아이들은 휴가 때면 매번 속초로 온다고 불평이다. 다른 곳도 많은 데 왜 속초만 가느냐고... 애들아 너희가 속초에 자주 오는 이 애비의 심정을 아느냐...

댓글목록

나그네님의 댓글

참 재미있는 추억입니다. 그런데 청호대교가 완성되면 사라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