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축항(방파제)의 추억

9,092 2008.02.08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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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아침이면 요란한 통통배 소리와 함께 매일 일찍 일어나 서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방파제, 축항이다. 속이 확 트인다. 넓은 바다, 잔잔하기도하고 거칠기도한 바다, 매일 날씨와 연관된 파도의 생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태양,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을 보면서 자랐다. 늦게까지 컴퓨터하고 늦게 일어나는 지금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일찍 일어나 자연을 먹고 자연과 함께 자랐다.


이 축항은 언제나 그랬듯이 추억의 보고이다. 어릴 때 축항의 높이는 왜그리 높아 보였는지 지금은 우습게 여기지만, 아뭏튼 끙끙 거리며 올라가던 곳이다. 이 축항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속초가 일본으로 열려있고, 석호인 청초호가 천혜의 항구로서의 이용가치가 있어서 만든 것이다. 방파제가 있음으로 청초호가 보호되고 속초항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 많은 돌들이 어디서 왔을까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등대 앞 영금정에 갔을 때 그 해답이 나왔다. 그곳의 바위들이 기묘하게 잘려나간 것이다. 바다에 있는 앞부분만 빼고 등대 바로 밑까지의 바위가 잘려 나갔고, 그 남아 있는 바위들의 대부분이 다이나마이트 구멍이 나있는 것을 보고 그리 짐작이 갔다.


지금은 축항의 모습이 거의 새로운 세멘트나 방파제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축항은 가난한 청호동 사람들을 보호하는 그야말로 고마운 축조물이다. 축항에는 구멍이 많이 나있다. 그 구멍은 바로 파도가 치면 그 압력을 분산시키는 작용을 하는 공기구멍이다. 그런데 그 당시는 먹고 살려고 구멍에다 소나무 기둥(고랑때)을 박고 새끼줄을 쳐서 오징어를 거는 장소로 쓰였다. 오징어 철이면 쟁탈전이 말이 아니다. 거친 아바이들이 서로 싸우고 실향한 설음까지 거기서 분풀이 한다. 누가 얼마나 선점했느냐에 따라 덕장의 넓이가 달랐다. 심지어는 파도가 치는 바로 앞까지 밀러나 나무기둥을 박기도 했다. 오징어를 지키기 위해 가마니를 펼치고 밤새 누워 자기도 한다.


축항은 그야말로 작은 게들과 고기들의 산란 장소이다. 낙시에 미끼를 달면 큰 명태낙시에도 우럭과 놀래미가 물 정도이며 아침에 나가면 몇 마리는 너끈히 잡아 온다. 엄마는 갯냄새가 난다고 개밥에 넣으라지만 애써 잡은 나로서는 소중한 고기들이다. 당시에는 얼마나 게가 많았는지 밤에 불만 가지고 나가면 바께스로 주어 담아올 정도였다. 꽁치를 막대기에 달고 물이 찰랑거리는 바위틈에 넣고 기다린다. 처음에는 작은 놈들이 달려 들지만 조금 있으면 큰 놈들도 사정없이 달라붙어 정신없이 먹는데 슬그머니 막대기를 들어 주전자에 털어 넣으면 그때는 끝이다. 이 축항은 배도미(감성돔 새끼)들의 낙시터로 유명하다. 6월말이면 큰 도미(3,4년생)가 산란을 하러 항구 안쪽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7월 중순이면 알을 낳고 개학할 무렵인 9월이면 햇 배도미가 강태공들을 흥분시킨다. 떼로 몰려 다닐 때면 하루아침에 5-60마리를 잡을 수 있다. 아침 저녁이면 방파제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이다. 장비도 없던 시절 대나무 장대 끝에 달아서도 그렇게 잡는다. 그때 미끼는 모래 백사장에 저녁이면 튀어다니는 ‘톡톡이’와 영랑호의 새우이다.


축항은 연인들에게는 낭만의 장소이겠지만, 가난한 아바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봄이 오면 미역을 건지고 말리는 곳, 여름과 가을이 오면 오징어를 널어 놓는 덕장이 되고 겨울이면 명태 줄을 푸는 곳이다. 당시 명태 줄은 나이롱으로 되어 있어 그 줄을 꼬이지 않게 하려면 밖에 나가서 꼬이지 않는 방향으로 풀어주고 당겨야 된다. 추울 때 형과 나는 삯일로 이 일을 담당하느라고 손이 얼곤 했다.

5월초쯤이면 속초앞바다에 진풍경이 일어난다. 그것은 미역을 채취하는 작은 배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와 작업을 한다. 방파제 위에나 백사장에는 온통 미역을 말리는 곳이다. 미역의 적은 비다. 한 방울이라 맞으면 미역은 끝이기에 언제나 스텐바이(대기)이다. 6월내지 7월이면 속초 앞바다에서 작업하다가 베어진 미역이 파도에 떠 밀려 오는 때가 되면 또 온 동네는 난리이다. 미역을 건지려고 물에 들어가는 사람, 갈구리를 던져 건지는 사람, 어떤 때는 너무 밀려와서 갈구리를 당길 수 없을 정도가 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거기서 느낀 것인데 욕심이 잉태하면 죄,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른다고 한 말을 실감케 한다. 실제 미역을 건지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


축항은 어부의 아내들이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장소요, 실연한 사람들이 와서 자살을 시도한 장소요, 그외에 서민들에게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개인 화장실이 없던 시절, 지금은 통하지 않지만 간이 화장실로 쓰이는 곳이다. 몇년 전에 필리핀의 서민 마을에 갔더니 다 그런 식이어 옛날 우리들의 생각이 나서 싱긋이 웃은 적이 있다. 그런데 고맙게도 파도란 놈이 가끔 몰려와 그것을 청소해주니 사람과 자연은 언제나 공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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