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청호초교-사랑의 도시락

9,620 2008.02.2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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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초여름 어느날, 날카롭게 소리지르는 키 작고 땅다무리한 최재혁 선생님 . 군대에 갔다가 온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걸핏하면 '원산폭격','한강다리', 소위 '대가리박아'가 공부의 시작이었다고 기억된다. 군대식으로 태권도를 한답시고 책상을 밀치고 기압을 지르게 하고,,,

그 렇게 무섭게만 보여지던 선생님이 지금까지 잊어지지 않고 뇌리 속에 박혀 떠나지 않는 것은 따뜻한 정의 한 수혜자여서 그럴 것이다. 그때 나는, 아니 우리 모두가 다 전쟁의 피해자가 아닌가. 어미 뱃속에 포탄소리듣고 태어난 우리가 아닌가? 그래서인지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억센 것도 그 영향일 것이다.

그때 며칠동안 도시락을 전부 싸오라는 선생님의 엄명에 순종하는 의미로 도시락을 가져갔지만 거기에 넣을 내용물은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수제비를 식혀서 도시락으로 싸갔다. 그런데 이 수제비는 점심시간에는 완전히 굳은 떡이 되는 것이 아닌가 ? 숫가락을 칼처럼 베어서 한입씩 먹는 것이 보통 곤욕이 아니었다. 그때 기억으론 철환이의 도시락에 있는 계란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것이 한이 되어 지금도 아침에는 후리이된 계란을 먹는다.

그 해 바다에 흉년이 들어 우리 청호동은 아니 아바이 마을은 아침에도 수제비, 점심에도 수제비, 저녁에도 수제비 (젊은 애들이 미국을 반대해도 지금도 고마운 것은 그 미국산 밀가루가 아니면 어떻게 살았는가) . 지겹게 지겹게 먹었다. 학교에 가서도 먹으려니 밀가루 냄세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그래서 점심을 싸오기가 싫었다. 빈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는 점심시간에는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그날은 최재혁 선생에게 걸린 것이다. '전부 나가지 말고 그 대로 앉아 있어'. 어느 누가 그 엄명을 거스리겠는가. 그런데 선생님이 각 분단장들을 일어 나라고 하며 도시락 뚜껑을 열어 앞에서 부터 분단별로 밥 한숟가락씩 거두는 것이 아닌가 . 그때 나도 한숫가락을 거들려고 했지만 빈 도시락이어서 그냥 지나치게 했다. 다 거둔 밥은 도시락 뚜껑을 넘쳤다. 4개 분단에서 거둔 밥은 도시락 몇 개분이었다. 그리고 그 밥을 선생님이 반으로 나누었다. 내 이름과 종식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겁을 먹었다. 혹시 한 숟가락을 돕지 못한 것에 대하여 탓하는가 했다. 그런데 그것을 와서 가져가 먹으라라는 것이었다. 며칠째 밥을 먹지 않고 뒷 뜰로 빠져나가는 것을 선생님이 본 것이다. 선생님의 명이라 밥을 먹긴 먹는데 밥을 먹는 것인지 선생님의 사랑을 먹는지 눈물로 얼룩진 밥은 줄지 않았다. 그때 느낀 것은 빌어 먹는 밥이 더 많다는 것과 최재혁 선생님에 대한 좋은 이미지였다.

그 이후로 나도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겠다고는 하고 조금의 도움을 주려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지금도 엄마 혼자 버겁게 사는 집의 아이들을 보면 그 과거가 작동하는가 보다. 그 고마운 선생님의 사랑을 수혜받은 나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분산이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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