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청호초교-도둑면죄부

9,610 2008.02.2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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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5년 2학기 늦가을 어느 날

오늘도 학교에서 사명받은 자처럼 늦게 남았다. 반장이 청소당번을 주관하고 청소당번을 대신해서 선생님에게 검사 결재를 맞고 선생님이 직원 회의를 마치면 검사를 받는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남는 습관은 반장의 투철한 애교심이 아니라, 집에 가면 죽도록 일해야하는 도피처로서의 장소가 학교였다. 그때 당시 집에가면, 늦가을 오징어를 널고 마른 다리 뜯고 조금있으면 뒤집어 널고 귀를 일구어 세우고 저녁 무렵에 뿌득뿌득해지면 집에 거두어 들여 손질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집에가면 꼭 뒤집어 널어야하는 시간이라 키가 작은 나로서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리고 그 일 양이 자그마치 1백드럼(2000마리), 그 전날치, 3일치를 합치면 일에 묻혀 산다. 5식구인 우리 집은 동생을 빼고는 전부 거기에 매달려야 먹고 산다. 우리 엄마의 욕심이 하늘에 닿아서 우리 자식들의 사정은 보지 않고 오직 돈을 추구하는 억척 엄마가 아닌가. 하기사 혼자 사는 엄마가 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그 정도는 해야하는 것이다. 우리 엄마의 지론 ... "돈 없어봐라 누가 밥 한술 떠먹여 주는가" 그런데도 나는 학교에 충성 , 아니 핑계거리... 형도 어느 정도 눈치챘지만 나의 변명은 언제나 한결같이 "선생님이 반장을 남으라고 했다"는 것. 우리 형은 그 레파토리를 너무나 잘알고 있다. 일하기 싫어하는 꾀당나귀 동생의 핑계를...

그러던 어느 날 옆반 6학년 여자 교실을 보았다. 여자 교실 뒤에는 언제나 학생들 저축금고가 있고 장부도 놓여 있다. 그때 6학년 2반 담임은 훗날 6학년때 우리 담임선생인 조순환인 것이다. 학생들이 다 집에 간 후에 그 반을 기웃거리다가 교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 여자 교실에 난생처음 들어가 보았다. 잘 정리 되었고 책이나 책장에 꽂힌 책들이 여자들 다웠다. 항상 궁굼했던 학생금고 쪽으로 갔다. 두근반 세근반 심장이 대포처럼 울렸다. 금고를 당기는 순간 열리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열어 보았다. 종이 돈은 없고 동전만이 몇 개가 있었다. 한 웅쿰 쥐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저쪽 복도 끝에서 발자욱 소리가 들렸다. 예상보다 선생님의 종례 회의가 일찍 끝난 것이다.

숨을 곳, 숨을 곳... 어딜 보아도 없었다. 그런데 교실 끝에 있는 구석에 청소함이 있었다. 거기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 안에서 고리를 잡고 운명의 시간을 기다렸다. 그 깐깐한 조순환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서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무언가 낌새를 챈 것 같았다. 금고를 살피더니 "자식들, 문단속도 제대로 안해..." 그러다가 더 의심스러운지 교실을 돌아 다닌다. 교탁 밑도 보고 책상 밑도 보고 이리기웃 저리 기웃한다. 그러다가 청소함 도구 숨은 내 쪽으로 오는 것이 아닌가 그 틈새로 보니 염라대왕이 오는 것과 같았다. 식은 땀이 범벅이 되면서 "이젠 죽었구나" 비명이 나올뻔 했다. 가까이 오던 선생님이 갑자기 앞에 서더니 고리를 잡아 당기는 것이 아닌가 나는 '죽으면 죽으리라' 안에서 꼭 잡고 있었다. 한참 실랭이를 치던 선생님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이상하다' 이상해...'하면서 가는게 아닌가 선생님이 교실 문을 잠그고 나간 한참 후에도 청소함에서 나가지 못했다 . 해가 져서 나가면서 동전은 책상 위에 던져 놓았다. 지금생각하니 아마츄어 도둑이 '나 회개하고 돈 놓고 갑니다' 표시를 단단히 하고서...

늦게 나가니 그나마 비틀어진 검정 고무신도 누가 훔쳐갔다. 유일한 루트인 백사장으로 걸어서 집으로 갔다. 어린 나이에 많은 생각을 했다. 평생 도둑의 길을 면죄부 받은 것이다.

그날 흘린 땀은 일생의 교훈이 되었다. 다시는 다시는....네버 네버...도적질은 안돼, 안돼...

훗날 이 일을 회고해보면서 다음해 우리 담임인 조순환 선생님이 그때 이를 알았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였을 것이다.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한 선생님의 사랑일까. 아니면 선생님의 눈을 가려 나를 숨겨주었던 하나님의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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