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초딩추억시리즈19-온정리를 회상하며

15,196 2009.12.14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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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동에 있는 작은 누나가 사는 아파트에 가보니 온정리가 바로 아래 눈 아래 보였다. 어려서 그렇게 멀어 보이던 온정리. 속초가 점점 확장되어
아파트가 조양동 온정리 밑까지 밀고 나간 것이다.

자동차 문화가 발달해서인지 청호동에서 그렇게 멀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조양동 아파트 뒷자락에 밀려 빈터만이 남은 빨래터.... 기억에도 없을 뻔한 그 온정리. 단장을 해서 깔끔은 해졌다. 옛 모습은 아니지만 5,60년대 청호동 사람들은 이 온정리 빨래터를 잊지 못한다. 없던 시절에 그렇게 고마운 장소가 이 온정리이다. 겨울에도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 밖의 온도가 차거워져도 항상 같은 상온을 유지하기에 상대적으로 뜨거운 물. 김이 무럭무럭 나와서 겨울에도 빨래를 할 수 있는 곳... 지금처럼 보일러에서 뜨거운 물이나오지 않던 그 시절. 세탁기도 없던 그 시절에 묵은 빨래, 큰 빨래(이불, 겨울 옷) , 삯 빨래(원양 온 뱃사람들의 것)의 모든 묵은 때를 씻어 내는 곳이었다. 그곳에 간 김에 슬적 슬쩍 남몰래 우리들의 묵은 때도 벗기던 곳....

옛날 생각도 나서 가까이 가보니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속초의 뿌리는 온정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1992년 조양동
선사 유적지가 바로 온정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온정리는 더운
우물(溫井)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더운 우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수온이 일정하여 여름에는 차갑
고 겨울에는 따뜻합니다. 소야팔경(所野八景)의 하나인 온정조
하(溫井朝霞)는 더운 우물과 빨래터에서 올라가는 수증기가
아침해 뜰 무렵 햇빛을 받아 빨갛게 빛나는 경치가 그렇게 아
름다울 수 없다고 선인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옛날 명나라의
명당자리를 보는 지관이 설악산을 내려다보니 그 맥이 청대산
을 지나 온정리 더운 우물로 흘렸다고 해서 이곳에 인재가 많
이 나올 것이다.

급조된 청호동(당시 부월리 더 세월이 지나서 오구)은 도시기반시설의 혜택을 속초시에서 가장 늦게 받은 곳이다. 60년대에 전기도 없어서 호야를 씌운 등잔불에 의지했으며 더구나 상수도시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속초가 1963년 의정부와 함께 시로 승격을 해도 청호동은 아직 전기와 수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청호동은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어도 바닷물이라서.... 한마디로 먹는 물과 생활용수가 귀했다. 아마 초창기 청호동 오징어는 매우 짠 것으로 기억된다. 바닷물에 씻어 말렸으니까....

청호동에는 1미터 이상만 파면 바닷물이 나와서 생활용수는 커녕 먹을 물도 없었다. 짠물이 덜 나오는 곳은 청호초등학교 옆의 우물이 유일한 곳이었고, 그나마 좀 덜 짠물을 먹으려면 조양동까지 물을 길으려 가야했다. 청호동 입구에서는 나룻배를 타고 가끔 중앙동으로 갔고, 그나마 텃새를 하는 시내 사람들의 구박을 받고 눈치를 보면서 물을 퍼왔다. 이때 항상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게 마련인데 물장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군용 드럼통을 리어커에 눕혀서 고정시키고 위쪽을 따서 물 붓는 입구를 만들어 송판으로 뚜껑을 만들고 아래에는 수도꼭지를 용접하여 달고 물 한 통당 얼마씩을 받고 팔았다. 이들이 훗날 자녀들을 물 팔아 공부시킨 소위 ‘북청물장사’들이 아닌가.

처음에는 물장사가 몇 명이 안되었지만 차차 많아졌다. 물 값도 싸졌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직접 물을 길으려 다녔는데 우리 누나들은 교대로 다녔다. 함석으로 만든 양철 물동이를 이고 조양동까지 가서 물을 길어 날랐다. 우리 큰누나와 작은 누나는 이 물 당번 때문에 적지 않게 싸웠다.
“아껴 써라. 내가 떠온 물은 희피(낭비)쓰고 니가 떠온 물은 아끼냐?
니(네) 순서냐 아니냐. 물을 적게 담아왔느냐, 다 흘렀느냐.....”

상수도가 청호동에 일찍 놓였으면 덜 싸웠을 텐데.... 그 당시 아침 저녁으로 청호동 길거리에는 물동이를 이고 다니는 여자들이 줄을 지어 다니는 모습이 진풍경이었다. 인구 6000여명이 사는 동네에 물이 없어 그 좁은 청호동 골목길을 물 길러 다닌다고 상상해보라 그 행렬이 만만치 않았다. 그 광경을 지금처럼 비디오라도 있었으면 멋진 추억거리인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머리에 물을 가득 이고도 흘리지 않고 오는 기술이다. 알고 보니 바가지를 가운데 띄워서 중심을 잡는 것이다. 또 자꾸 반복하면서 요령도 생기고.... 따발이(짚으로 만든 머리 받침대)에 중심을 잡고 손을 놓고도 오는 것이다. 물동이가 새는 속도에 따라 흐르는 물을 박자에 맞추어 손을 저어가면서 멀리 흩뿌리는 기술은 달인 수준이었다.

몇 년 전에 홍도에 가보니 거기도 물이 귀해서 빗물을 받아쓰고 집집마다 탱크에 물을 저장해서 걸러서 쓰는 것을 보았다. 우리도 어릴 때도 비가 오면 드럼통에 빗물을 받아쓰던 생각이 났다. 물이 부족해서 물통을 이고 십리 이 십리 다니는 아프리카 여인네들 보다는 낫지만 그 시절 청호동의 엄마와 누님들은 고생을 꽤나 했다.
그때를 아십니까? 우리 어린 시절의 물난리를.... 그리고 묵은 빨래를 그 온수에 품어 가난한자의 마음까지 풀어준 온정리를.... 이제 우리 가슴에 온정리는 따뜻한 마음을 품은 溫情里로 남을 것 같다.

댓글목록

청호동님의 댓글

추억이 깃든 온정리가 아파트 공사로 없어질 위기에 와 있습니다,<BR>아파트가 남아돌아서 큰일인데 또 다시 주공아파트를 짓는다 하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BR>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온정리 마을을 없에 면서까지 쓸데없는 아파트를 지어야 합니까 .. 참  .... 먹을것 없을때 온정리마을에 가서 서리하고우리에겐 참 따뜻하고 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