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초딩추억시리즈22-머구리이야기

10,516 2010.05.0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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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도 7월 16일, 미국은 달나라에 사람을 보냈다. 닐 암스트롱이 우주복을 입고 달 표면을 뛰어 다니는 모습에 우리 모두가 감격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꼭 어릴 때 기억속의 머구리, 즉 잠수부처럼 보였다. 하기사 좀 비싼 우주복과 싼 머구리 복의 차이지 척박한 환경 속을 견디는 공통점이야 우주나 물속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랴..... 분에 넘치는 가분수 헬멧을 쓰고, 산소를 본부에서 공급받는 일, 퉁퉁 부은 부풀린 옷...... 내가 아직도 우리나라의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도 머구리 처럼 느껴지는 것은 출신지 탓일까? 무식의 극치일까?

이번 천안함 사건 때 잠수병으로 죽은 故 한주호 준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남을 구하기 위해 그 깊은 바다 속에서 임무수행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다 유명을 달리 했으니..... 유가족은 얼마나 슬프며, 그런 유능한 인재를 잃은 해군 또한 슬프고.... 우리 모두 천안함 침몰로 인하여 집단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않는가? 그를 추모면서 어릴 때 머구리에 대한 추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청호동 백사장과 축항에는 아주 가끔이지만 바다에서 죽은 시신이 육지에 밀려온다. 그것을 보고 며칠씩 잠을 설 칠 때가 있었다. 난파되어 죽은 사람들, 자살해서 죽은 술집 여자들, 서울에서 파도 구경 왔다가 파도의 성질을 모르고 폼 잡다가 휩쓸려 죽은 사람들..... 정상보다 몇 배나 불려진 몸,

그 중 우리 동네 앞 머구리의 슬픈 추억을 말하고자 한다. 신포마을 갯배 아래는 머구리배 집합소 였다. 왜냐하면 청초호에 머구리배를 정박시키면 설악산에서 가끔 대중없이 내려 부는 하늬 바람에 작은 배들이 온통 물을 뒤집어쓰기 때문이다. 작은 머구리 배들에게는 나룻배 근처가 바람을 덜 타기에 그곳에 정박했다.
머구리 배는 주로 평상시에는 성게, 전복, 멍게, 큰 홍합, 해삼을 건지며, 때로는 부수입으로 문어와 큰 고기도 잡는다. 초봄에는 양질의 미역과 다시마를, 초겨울에는 주로 양미리를 잡는다. 바다 모래바닥에 그물을 평으로 깔아 놓는다. 아침 기상과 함께 모래 속에서 일어나는 양미리를 놀라게 해서 그물에 걸리게 하는 데 이때 머구리의 밟는 역할이 필요하다.

머구리는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배에서 올린 수입의 3분의 2 이상이 머구리 몫이다. 그 나머지를 가지고 선주, 선장, 펌프질하는 선원들이 배분 기준에 따라 나눠 먹는다. 옛날에는 머구리의 호흡은 콘프레셔가 아니고 거의 다 펌프질에 의존했다. 그러기에 펌프질하는 사람에게 머구리가 잘 보여야 하고, 때로는 따로 그 몫의 일부를 챙겨주거나 믿을 수 있는 친척이 담당한다. 머구리배 사람은 다 각각 중요하다. 머구리가 물에 들어갈 때 줄을 풀고 호스를 담당하며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 줄을 당겨주는 사람, 호스가 스쿠르에 닿지 않도록 물 흐름과 머구리의 공기방울을 따라 온 신경을 쓰고 배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 선장이다.

어느 날 친척 머구리 배에서 펌프질하는 사람 중 한사람이 비게 되어 알바식으로 일당받고 대타로 바다에 따라 나갔다. 경험도 할 겸....
머구리는 바다 수온 때문에 여름이라도 털옷에 내복까지 여러 겹 끼어 입고 난후 통으로 된 육중한 방수복을 입는다. 그리고 들기도 힘든 납으로된 신을 신는다. 그리고 사다리에 걸쳐 몸을 3/2쯤 바다에 잠금다. 담배를 여러 대 줄줄이 피우고 나면 한 사람이 들기도 힘든 육중한 놋쇠 머리 투구를 씌운다. 이때 얼굴은 눈만 남긴 강도처럼 털로 짠 빵모자를 목가지 덮어 쓴다. 그리고 넛트를 있는 힘껏 조인다. 준비가 되면 서서히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물속에 몸을 맡기고 수심 1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가 작업을 한다.

조도를 중심으로 근처 수심이 10여 미터 쯤 되는데, 조도 밖 더 깊은 곳에 욕심을 내면 목숨을 잃는 수가 종종 있다. 준비되면 머구리는 서서히 공기호스와 비상 줄을 달고 내려간다. 배는 종일 머구리를 종종 걸음을 치며따라 다닌다. 지금처럼 통화하는 장치도 없던 그때는 척박한 바다속을 홀로 내려간다. 누가 바다속을 낭만이 흐른다고 하였는가? 사지에 홀로 내팽겨진 머구리의 심정을 어떠 했을까? 배위의 선원들과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바다 속에서 느끼는 한없는 고독, 가난하기에 배운 이 직업,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직업, 꼭 이렇게 벌어야만 하는가? 목숨은 타인에게 맡긴 채로.....

하루 종일 펌프질을 하는데 죽는 줄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쉬면 바다 속의 머구리는 죽는다. 목숨을 맡기는 사람도 있는데 펌프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머구리는 정말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맞았다. 다는 아니지만 많은 머구리들은 돈을 흥청망청 쓴다. 술집과 중앙동 색시 집에서는 머구리가 인기 캡이다. 돈을 잘 쓰니까..... 목숨을 담보로 하는 직업이기에 돈을 잘 번다. 그런데 머구리들의 공통점은 한결 같이 젊어서 몇 년만 하고 그만 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거의 불구가 되거나 죽어서 그만두는 예가 많았다.

초등학교시절 어느 날 부두가에 나갔다. 큰 해삼 삼는 가마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그날도 소금물에 해삼을 삼는 것으로 알았다. 지금처럼 냉장 장치나 유통이 빠르지 못해서 소금물에 삶아야 상품이 된다. 해삼은 삶아 놓으면 10/1로 줄고 그것을 말리면 더 오그라진다. 고급이라 우리는 맞보지 못하고 일제 시대 때 맞보았던 일본 사람에게로 전량수출이 된다. 그래서 가격도 비싸다. 그런데 사람들의 모임이 심상치 않았다.

해삼 가마니에 해삼이 삶아지는 것이 아니라 머구리가 옷을 입은 채 삶아지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대형 가마솥에는 시벌건 불이 타고 있었다. 어린 기억에 너무나 놀라 기절할 뻔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잠수병에 걸린 머구리가 몸을 푸는 것이었다. 잠수병이 걸렸다는 것이다.

잠수병은 깊은 바다 속은 수압이 매우 높기 때문에 호흡을 통해 몸 속으로 들어간 질소기체가 체외로 잘 빠져나가지 못하고 혈액 속에 녹게 된다. 그러다 수면 위로 빠르게 올라오면 체내에 녹아 있던 질소기체가 갑작스럽게 기포를 만들면서 혈액 속을 돌아다니게 된다. 이것이 몸에 통증을 유발하게 된다.
잠수병이 생기는 현상은 사이다에서 기포가 생기는 원리와 비슷하다. 사이다를 만들 때 병 속에 이산화탄소를 압축시켜 넣고 뚜껑을 닫게 된다.
이때 기체가 액체 속으로 녹아들게 된다. 반대로 뚜껑을 따면 기압이 풀리면서 사이다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가 기포 형태로 쏟아져 나오는 것과도 같다고 한다.

아마 이 머구리도 더 많은 해산물을 채취하려고 더 깊이 들어 갔던지, 긴급 상황이 발생하여 급히 물속에서 나왔다든지, 아니면 저체온증에 걸렸든지 지금은 이렇게 해삼이 삶아져야하는 자리에 당신이 누워있는 것이다.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불가마 솥에 삶아야 소생한다는 것이다. 찜질방도 아니고... 그것도 며칠 씩이나.... 여러 번 보았는데 결과는 불구가 되거나 대부분 죽었다.

그 날은 유리 투구 속에 있는 잠수부와 눈이 마주쳤다. 충혈된 눈, 사경을 헤매면서 빨리 구원해 달라는 절규처럼 보였다. 밖에 나가 죽어도 좋으니 빨리 건져 달라는 표정이었다. 지옥이 따로 없지..... 밖에 있는 가족들이 통곡하고 친척들이 발을 동동 거렸지만 그 방법 밖에 처방이 없으니 그대로 불을 때며 펌프질을 하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들이 너무 무식했다. 사람을 삶다니 식인종도 아닌데..... 너무 상했다. 안타까웠다.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뱃사람들의 심정이야 오직 했을까?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얼마나 생에 대한 애착이 있었을까? 지금도 그 어릴 때 머구리의 충혈된 눈동자가 눈에 선하다. 가난이, 직업이, 삶이 그렇게 고된 것을.....

천하를 주면 무엇하나? 목숨보다 귀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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