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초딩추억시리즈23- 명태이야기(1)

7,903 2010.05.1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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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휴전선 바로 아래 있는 속초항은 명태의 산지이다. 지금은 온난화로 그렇게 많이 잡히던 명태를 보지 못하고 금태(金太)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어쩌다가 그물에 조금씩 잡힌다. 그나마 지금 시장의 명태는 전량 러시아나 일본 북부에서 잡아 얼린 수입 동태이다. 지금도 겨울에는 북한의 청진에는 좀 잡히리라 생각된다. 명태가 적게 나기 시작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 졸업쯤이니까 1970년 초라고 생각된다. 그 지겹던 명태 낙시 삯일을 졸업과 동시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명태가 잡히지 않은 것은 온난화가 주범이고, 다음으로는 노가리를 저인망으로 밤낮없이 훑어 씨가 말랐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명태(明太)는 과거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산물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잡히는 시기에 따라 봄에 잡힌다고 해서 춘태(春太), 겨울에 잡히는 것은 동태(凍太)라고 부른다, 가공방법에 따라 얼리지 않고 금방 바다에서 잡혀 잡은 것을 생태(生太), 반쯤 말린 것을 코다리, 말려서 수분이 말끔히 빠진 것을 북어라고 한다. 겨울에 바람과 추위, 눈보라 속에서 그 속살이 그 겁데기 안에서 여러 번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노랗게 말려진 것은 황태(黃太)라고 한다. 산란기 중에 잡아 배가 부푼 상태를 알태라고 한다. 크기에 따라 대태, 중태, 소태로 나누고 어린 새끼는 노가리라고 하는데 말려서 술안주용으로 쓰인다.
잡는 방법에 따라 주낙으로 잡으면 낙시태, 그물로 잡으면 그물태, 며칠 파도가 쳐서 미쳐 건져 올리지 못하다가 늦게 건져 올려 새우가 파먹어 구멍이 송송한 놈은 삭송이라고 했다.

명태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대가리 속에 들어 있는 아가미는 서더리 젓갈의 재료요, 창자는 창란 젖, 알은 명란 젖을 만든다. 수놈은 꼬불꼬불한 하얀 곤지를 가지고 있다. 곤지는 매운탕의 별미를 제공하며, 간은 드럼통에 모았다가 가공업체에서 기름을 짠다. 그 유명한 간유이다. 또 간을 국에 끓이다가 건져서 마늘에다 고춧가루 및 여러 양념을 넣고 다데기를 만들어 명태 국에 넣으면 별미이다. 명태 눈은 어려서부터 눈을 맑게 해준다고 믿어서 어려서부터 정말 많이 먹었다.

초등학교 시절, 명태에 관한 추억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이루리라 생각된다.

5-60년대 속초에는 겨울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명태잡이 배가 몰려 온다. 11월 쯤이면 날씨도 바다물도 차거워진다. 멀리 통영, 마산, 부산, 포항, 울진, 삼척, 묵호 등지에서.... 그때 오는 이유는 11월 쯤이면 양미리가 나는데 그것을 절여서 미끼를 미리 만들어야하며, 낙시 일을 할 사람들(특히 억센 청호동)을 구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겨울 명태잡이는 뒤에서 낙시일을 해주지 않으면 사실상 손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명태 배는 열악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5-6톤을 넘는 배가 없었다. 앞이 뭉퉁한 목선도 있고, 무동력선도 있어 노를 여려 명이 저어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50년대 말부터는 ‘야끼다마’라고 하는 일본식 동력선이 유행했다. 이는 무쇠를 구운 원통에 피스톤이 하나인 소위 ‘통통배’였다. 속력은 기어가는 수준이었지만 점점 나아져갔다. 시동은 배 화약에 불을 피워 피스톤 내부에 집어 넣고 달군 다음에 그 폭발력으로 기계가 움직인다. “통, 통, 통통, 통통통통, 다다당 탕탕탕.” 다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새벽 3시부터 시작해서 5시까지 배가 나가는 2시간은 항구는 온통 소음으로 가득 했다. 우리 집은 배를 대는 곳과 멀지 않아서 새벽이면 거의 잠을 못 이룰 정도이다. 그러나 피곤한 몸은 그 소리도 잊어 버린다. 요즘 조그만 소음도 민원을 넣는 사람들에게 그 소음을 들어도 잠을 잘 자는 청호동 사람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60년대 초에 명태 배에도 디젤 엔진이 도입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어흥호’라는 배가 처음 시작했다. 우리 큰 외삼촌이 그 배를 처음 탔는데 자랑이 귀에 못이 박힐 정도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보다 빠른 것이 그렇게 자랑거리인지..... 그 후 많은 배가 경쟁하듯이 디젤 엔진으로 바꿨고 톤수도 늘렸다. 새벽 3-4시에 나간 배가 저녁 8시쯤부터 11시까지 작업을 마치고 들어온다. 그 추운 겨울 이른 새벽이면 항고(야전에서 밥을 끓여먹는 그릇)에 생쌀을 씻어 담아서 나간다. 찬합에는 김치 하나만 담고.... 아침에 배에 나가 밥을 하고 반찬은 그 싱싱한 명태 소금국인데 바다에서 먹는 맛은 대통령과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절벅 절벅 거리면서 뱃사람들이 부두가로 몰려온다. 절벅 거리면서 오는 이유는 명태 잡이 어부들의 신발은 마치 우주인처럼 두껍고 이중 삼중으로 된 고무장화이며 그 속에 짚과 짐승 털로 채워졌다. 그래서 무게가 보통이 아니다. 추운 겨울 작업하는 동안 발이 얼지 않도록 그런 것을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삼촌들은 자기가 맡은 배의 선장들이라서 일찍 오는데 꼭 새벽이면 우리 집에 모인다. 매형 없는 누나 집이니 마음껏 떠든다. 밤새 명태 건조, 낙시 일 때문에 지쳐 늦게나마 잠을 자려는 우리들은 고려하지 않고 떠드는 것이다. 전 날 명태 조황, 수심, 파도, 날씨, 애로사항 등 등.... 우리 형제들은 엄마에게 여러 번 항의했지만 동생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엄마의 귀에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명태 배에는 5-6명이 탄다. 선장, 기관장, 갑판장, 낙시를 바다에 뿌리고 낙시 함지에 거둬 올리는 사람, 잡은 명태를 낙아 채며 벗기는 사람, 그리고 잡은 명태를 칡 줄에 20마리씩 코를 꿰는 사람이 각각 역할 분담을 해가며 명태를 잡는다. 하루에 평균 2-3발을 잡았다면 괜찮게 잡았다고 할 정도이다. .1발에 100두룸이니 4000마리에서 6000마리를 잡은 셈이다. 요즈음 같으면 명태 2-3마리에 만원을 치면 2000만원어치가 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워낙 명태가 많이 잡혀 100분의 1의 가격이지만.... 우리들은 좀 덜 잡아 왔으면 기대한다. 왜냐하면 명태를 너무 많이 잡는 날에는 낙시 일이 배나 힘들고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새벽 그 짧은 시간에 좁은 청초호 수로에 수백 척이 한꺼번에 바다로 나간다고 할 때 그 항구의 복잡함을 상상해 보라. 시동 거는 통통배의 소음, 배가 서로 부딪혀서 부서지는 소리, 거친 뱃사람들의 고함 소리, 욕하는 소리, 비명소리.... 추운 겨울은 그렇게 시작된다. 저녁에는 낙시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아낙들.... 우리 집은 봉이다. 늦게 배가 들어오면 함지를 들고 조는 사람, 방금 들어왔다고 고함치는 사람. 흔한 핸드폰이 당시에 있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배를 밤 늦도록 무한정 기다리지 않고....

어느 겨울, 대한 추위 때에는 배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얼음을 뒤집어 쓰고 들어오는 쇄빙선 같다. 하얗게 바닷물을 뒤집어 쓰서 얼은 배는 마치 얼음 덩어리가 굴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잡은 명태도 꽁꽁, 사람도 꽁꽁, 온통 눈밭 얼음 밭이다. 당시는 왜 그렇게 추웠는지? 그래도 명태를 많이 잡은 기쁨이 있기에 어부들은 추위도 잊었는가 보다. 잡아온 명태를 육지에 부리는 일도 전쟁이다. 그 밤에 다 풀어야하는데 배에서는 아예 육지로 던진다. 어떤 것은 칡이 풀어져 명태가 낱마리로 흩어져 버린다... 개평 얻어 엿 바꿔 먹는 재미로 터지기를 기다리는 우리들... 그래도 많이 잡은 덕에 한 두마리 집어가서 엿을 바꿔 먹어도 봐주는 인심이 목숨 걸고 바다에서 일한 어부의 인심이 아닌지.... 명태를 육지에 부린 즉시 니야까 부대가 대기해서 명태를 싫고 무조건 덕장으로 달린다. 청호동은 오르내리는 니야카, 조업 근ㅌ내고 올라가는 선원들, 낙시 함지 이고 가는 아낙네, 명태 배 가르는 칼을 들고 활보하는 아줌마 부대.... 활기가 넘쳐 사람 사는 동네 같았다.

우리 큰 누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달인이다. TV가 있었다면 방송도 탔을 것이다. 명태 배 가르는 선수이다. 20마리를 한 칡 줄에 맨 채로 배를 가르는 데 손과 칼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알은 알대로, 창자는 창자대로, 간은 간대로 분리된다. 얼마나 빠른지.... 속도가 돈이요 삶이니까....
그 추운날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가 가면서, 더 신기한 것은 창자가 밖에 나오자마자 속이 훑어지고 내장이 일직선으로 줄을 서는 것이다. 20마리를 다 배를 가르고 잡아 던진다. 그 때 칡줄에 칼을 살짝 대면 명태가 흩어진다. 그것을 우리 형은 새끼줄을 뜨거운 물에 녹여 지근지근 밟아 부드러워진 짚을 대기 시켜 놓는다. 짚을 2-3개 쥐고 명태 코를 낀다. 2마리가 한조가 되어 끼워지는데 그 솜씨 또한 달인이다.

작은 누나는 2마리씩 낀 명태를 한손에 5코씩 10마리, 즉 20마리를 양손에 나눠 손에 쥐고 깔린 가마니에다가 사정없이 때린다. 오른쪽, 왼쪽 골고루 3번씩 치면서 비늘을 벗긴다. 사방에 명태 비늘이 춤을 추면서 튄다. 추운 날 얼음도 튀고 명태 비늘도 튄다. 명태를 반 잘린 드럼통 2개에 담긴 물에 씻으면 덕장 위에 걸친다. 나는 그것을 넓게 펴는 일을 한다. 우리 집은 손이 척척 맞는다. 아비 없이 커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족 사랑이 그 고된 현장을 이기게 했다. 그 밤에 명태 씻어 거는 일을 마치면 서로 온몸에 튄 바늘과 얼음을 털어 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배당된 낙시 일까지 마치면 고된 긴긴 밤이 짧아지는 것이다. 그 명태가 우리들을 살렸다.
우리 뿐 아니라 어려운 시절, 전쟁 직후 많은 사람을 살려준 고기이다.

댓글목록

조카님의 댓글

조카 이름으로 검색 2010.06.07 00:00

진즉에 좀 알려 주시지요 이런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요..외삼촌, 우리 큰 누나라 함은 저의 엄마가 맞지요..ㅎㅎ..저도 태어난 곳은 청호동 아바이마을이지요..본적은 동명동으로 되어 있지만... 6.25전쟁으로 인해 함경도에서 피난 온 피난민들이라 땅 1평도 없이 다들 엄청 고생많았지요..큰 누나(나의 어머니) 명태 달인이었지요..외형만 보고 숫놈인지 암놈인지 정확히 가려내었지요..얼마나 많은 명태 할복작업을 해 봤으면 그렇게 되었겠습니까..우리 집도 덕장일이 주업이라 시집와서도 죽으라고 일만해서 지금은 팔다리어깨허리 안쑤시는데가 없을 지경입니다..그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뒤늦게 열심히 공부하여 목사님이 되신 외삼촌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고향 아바이마을에서도 목회일을 하시는 날이 언제나 있을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