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초딩추억시리즈26 - 손가락을 잘라먹은 명태

9,837 2010.07.0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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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가 손가락을 자르다니..... 복어가 잘랐다면 이해가 되는데 명태라니.... 명태를 아는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고 반문한다. 이제 그 명태가 흉년이었던 시절의 사연을 좀 더 쓰려고 한다.

명태가 나지 않아 어려움을 당하는 엄마의 동생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려는 노력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피난 나온 형제들을 우리 엄마가 다 책임져야할 이유는 없다. 누나로서 동생들을 이곳 속초에서 만난 기쁨을 무엇으로 다 말하랴. 어려울 때도 계속 도와주는 행동이 그것일 것이다. 국군과 유엔군이 함흥에서 철수하기 전날, 동생 삼형제는 자기 가족들과 함께 북청에서 큰 목선인 고깃배를 타고 먼저 내려왔다. 꽉 찬 배에 엄마가 식구들(누나들과 형)을 태우려니까 탈자리가 없다고 혼자 살겠다고 내 뺀 동생들이었다. 그런 동생들을 나 같으면 만나지도 않으려만 핏줄이 무엇인지..... 형 만한 아우가 없다고....

그래도 내리 사랑이었다. 명태 흉년을 같이 나누는 대신 우리 가족이 당하는 아픔은 너무나 절실하였다. 돕는 게 싫은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우리도 너무 긴축하고 살아야 하니까 말이었다. 매일 밀가루... 수제비....
그것도 지금처럼 호박이나 좀 넣고, 감자를 넣고 양념된 수제비도 아니다. 아무렇게나 잘라 던진 멀건 소금 수제비국... 정말 먹기 힘들었다. 중앙시장에 매일 콩가루를 사러가서 단골집이 생겼다. 그 콩가루 장수는 내가 매일 콩가루를 사려가니 “너 네 집은 그렇게 콩가루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냐?” 고 묻는다. 누가 벙어리 냉가슴 속을 알리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먹기 싫어 주리를 틀면 엄마는 “배때지가 불러서...”라고 말한다. 물론 지금도 세뇌되어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무의식적인 언사가 튀어 나와 나도 놀란다.

다행인 것은 명태가 흉년이면 미끼로 절어 논 양미리가 반찬을 대신한다. 먹기 전 하루 종일 불려서 소금기를 빼고 찐다. 그 위에다 고춧가루를 조금 뿌리면 그날 반찬이다. 그것도 막판에는 식구 당 배급이다. 누나들과 형은 2마리씩, 나와 동생은 1마리 반씩이다. 정말 동해안 고기 중에 제일 맛이 없는 생선이 양미리가 아닐까?. 그래도 도루묵(은어)은 낫다.

어느 날 엄마가 장사를 하고 늦게 돌아오면 나와 형은 자는 체 하다가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깬다. 아니 밥을 적게 먹어 배가 덜 차서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큰 누나는 엄마에 대해서는 지극 정성, 효녀이다. 엄마가 밀가루 음식을 싫어해서 쌀밥을 준비한다. 쌀을 몰래 사서 엄마만을 위한 밥을 만들어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놓는다. 귀신같은 우리 형제는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엄마가 늦게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엄마가 들어와 밥을 먹기 시작하면 우리 형제는 이불을 덮어 쓰고 있다가 빼꼼히 눈을 뜬다. 엄마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본다. 얼마나 열심히 노려보는지 숟가락 따라 눈동자가 오르내린다. 엄마도 모를 리가 없다. 엄마가 목이 막혀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딴 전을 피우며 이야기 하신다.

“아까 장에서 멀 좀 먹었더니 배가 부르데.....” 우리가 기다린다는 것을 아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같이 장사하는 아줌마들이 우리 엄마는 장에서 절대 군것질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돈을 아끼는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우리는 슬그머니 밥상을 내민 엄마의 밥상에 상습적으로 앉아 가위바보를 하면서 철닥서니 없이 그 밥을 빼앗아 먹었다. 형은 밥 숫가락을 크게 해서 뜬다. 나는 고함지르면서 똑같이 나누자니, 규칙위반이니, 바보니 별소리를 해도 결국 형을 이길 수 없다. 밥 전쟁에 진다. 전쟁에 룰이 어디 있는가? 이기고 보는 거지. 결국 나는 적게 먹고서는 두덜거린다. 지금 생각하면 아들을 향한 모성애인데....

이렇게 어려움을 같이 했던 형에게 큰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청호동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몇 명 안 되던 때, 엄마와 식구들의 부지런한 노력에 의하여 형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다녔다. 거의 졸업 때가 가까웠다. 형은 명태, 그것도 엄마와 동업하는 아줌마들의 대태(大太)를 축내는 일등 해적이었다. 나는 항상 눈감아주는 덕으로 떡 고물을 먹으니 공범이었고..... 엄마에게 채근한다. 아니 세뇌시킨다.
대학에 간다는 것이다. 수학을 잘하기에 수학선생이 되겠다는 것이다.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마이동풍이다. 사기 당하고 흉년에 당신의 동생들을 살리려고 퍼준 엄마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얼마 있으면 가족을 위해 헌신한 큰누나도 시집을 가야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유일한 소원은 아들들이 댕구리 배(저인망 어선) 선장이 되는 게 소원이었다. 배타서 돈 잘 벌고, 장사할 때 조합원들에게 천대를 받지 않으려고.... 형은 배를 타지 않고 대학을 가야 한다고 조르고, 엄마는 안된다고 버티고.... 이 두 고집이 맞서던 어느 날 드디어 한 사건이 일어났다.

낮잠을 자지 않던 내가 무엇이 피곤해서인지 그 날에는 곤하게 잠을 잤다. 그런데 고함 소리가 들린다. 큰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영택아! 일어나 이것 좀 조여라. 꽉! 빨리 빨리....”
나는 얼떨결에 일어나서 형의 팔에 감긴 막대기를 비틀었다.
“이게 뭐냐? 왜 이렇게 해야 돼?” 형은
“잔소리 말고 틀기나 틀어, 새끼야...”
“으 으.... 나 죽어......”
비명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멋모르고 무조건 나무를 한쪽 방향으로 돌렸다. 그런데 온 방에 피가 아닌가.
“이게 뭐냐? 피가 아니야?”

그런데 한쪽 구석을 보니 뭐가 개구리처럼 툭툭 뛰어 다니다가 꼼지락 꼼지락 거리는 것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피를 머금은 금방 끊어진 새끼 손가락이었다. 잘린 것이다. 아니 자른 것이다. 그래서 피가 솟으니 나더러 지압을 하라고 한 것이다. 팔뚝에 감긴 비비선(군용 전화선)을 감고 지혈이 되도록 막대기를 끼워 논 다음 손가락이 떨어지자 나보고 꽁꽁 돌리라고 했다. 어디서 지혈하는 것은 배워 가지고....
내가 기절할 뻔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렸다.

“형아, 손 잘랐다....” 급한 나머지 ‘손가락’ 말이 나오지 않아 ‘손을 잘랐다’고 했다. 밖에서 일하던 누나가 놀라서 뛰어 들었다. 비상이다. 콜택시도 없던 시절에 형의 손을 기저귀로 둘둘 말았다. 그리고 누나들과 함께 부랴부랴 부축하고 갯배 넘어 중앙동에 있는 병원으로 향하였다. 나중에 장사 갔다 온 엄마가 그 소식을 알았다. 그동안의 참았던 설음과 함께 땅을 치며 통곡 하였다. 울 일이 많았는데 또 울 기회를 잡으신 것이다.

그날 잘린 손가락은 내가 모래 백사장에 묻었다. 그후 잘린 손가락은 두개가 되어 형의 가슴속과 엄마의 가슴속에 묻혀 있었다. 일은 형이 벌렸지만 욕은 내가 맡아 놓고 먹었다. 눈이 빠지도록....
‘감시를 못했다’ ‘짜고 했다’ ‘형의 손가락을 짜를 때 옆에서 도왔다’느니 등등.....
억울해서 펄쩍 뛸 정도였다. 나중에 형에게 물었다
“어떻게 잘랐어? 왜 잘랐어? 그것도 오른손 새끼 손가락을?”

형의 대답은 명태 낚시를 개는 양쪽으로 구멍이 두 개난 쪼비대 판이 단두대이고 그 위에다 오른손 새끼 손가락을 대었다는 것이다. 명태 미끼 써는 칼을 위에 놓고 왼손으로 벽돌을 잡고 일격에 가격했다는 것이다. 흉년에 미끼 대신 손가락을 자른 것이다.
잘린 손가락이 펄쩍 튀어 다닐 줄을 몰랐다나?.... 피가 천정까지 솟구치고... 하기사 처음 잘랐으니 그럴 수밖에.... 이유는 대학을 보내 달라고 성토를 했다는 것이다. 두 번 성토했다가는 여럿 죽일 뻔 했다. 엄마 속은 까맣게 타 버렸고 대학 보낼 마음까지 타버렸다. 그래도 반공을 국시로 삼는 혁명공약 시대라 양심은 있어서 검지 손가락을 자르지 않아 군대는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훗날 손가락 잘라가면서 노래 부르던 한(恨) 많은 대학은 만학으로 자수성가해서 갔다. 진작 그 생각을 했더라면 생 손가락이 수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을....

명태가 흉년이 되는 해, 명태가 대학 보내 달라고 성토하던 형의 손가락을 잘라 먹었다. 논리가 너무 억측이고 비약인가? 그래도 사실이니까....

댓글목록

강호순님의 댓글

죽을래?

ㅎㅎ님의 댓글

ㅎㅎ 이름으로 검색 2010.11.08 00:00

위에분 장난이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