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뭍으로 오른 오징어 - 군대에서 바뀐 운명(1)

6,521 2011.12.2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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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가야하는 군대.... 가기 며칠 전까지 봄에는 문어, 여름에는 오징어를 잡았다. 틈이 나면 친구들 집에 가서 뭘 그리 좋은 것이라고 민화투, 고스돕, 도리 찍구뗑, 육백, 섰다를 배워 가면서 했다. 또 술도 배웠다. 때로 필림이 끊어지도록 취해보기도 하고... .담배 피는 것도 배우고, 그래도 아바이 마을 총각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총각딱지 한번도 못 떼고.... 그 시기에는 또래가 한없이 좋았다. 끽끽대고 웃고, 같이 뒹굴고.... 친구 따라 강남가고.... 세월 잡아먹는 데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다.

22살 되던 해, 1972년 8월 말, 무더운 날에 군으로 소집되어 열차를 탔다. 열차 타는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강릉에서 밤에 갈지(之)자로 태백의 도계를 가쁘게 오르는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철거덕 거리는 기차소리가 빠를수록 논산 훈련소가 가까옴을 느꼈다. 아침에 도착하자 마자젊은 기관병들이 군기를 잡는다고 그러지 않아도 바짝 긴장된 우리의 마음을 오그러 뜨렸다. 이유없이 패고, 이유없이 소리 지르고, 아래 위로 눈을 부라리면서 겁을 주었다.

“이제 현실이구나. 3년간 죽었구나.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지....”

연병장에 도착하니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동갑내기들을 모았는지 인산인해였다. 날이 밝아 부대 내 신체검사를 마치고 “완(完)”자를 받아 최종 입영이 결정되었다. 불합격 받은 자들은 집으로 귀향 되었다. 다음 날부터 훈련소가 배치되고 옷을 지급받은 후 훈련이 시작 되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눈이 퉁퉁 붓고 아프기 시작했다. 어디서 옮아 왔는지 몰라도 눈병이 난 것이다. 당시 여름의 ‘유행성 안질’인 것이다. 기관병들은 욕설을 하면서

“눈을 쳐다보지 말라”고 “전염된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왕따를 시키고 격리 시켰다. 두 주간 동안 의무대에서 눈을 아래로 깔고 다니며 죄인 취급을 당했다. 남들은 다 훈련에 임하는데 눈 병 때문에 서자 취급을 받은 것이다. 하기사 눈병이 걸려도 “완”를 받았으니 국방부의 세월의 시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2주 후 눈이 낫자 “100 보병” 병과가 바꾸면서 단기하사로 차출되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기왕 군대 생활하는 것, 하사관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말뚝이 아니고 단기라는데....

이때부터 운명의 시계는 어떤 사건을 향하여 가고 있었다. 논산에서의 전 후반기 훈련 8주를 마치고, 여산 제2하사관 학교로 갔다. 거기서 혹독한 훈련을 24주, 6개월 동안 받았다. 여름에 군에 가서 봄에 나왔으니 훈련만 9개월을 받은 셈이다. 동작이 느리던 내가 보병 하사관 6개월의 훈련에 빠르게 변화되었다. 내 자신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눈에서는 살기가 나고, 군기도 들고... 어떤 적도 물리칠 당당한 기세였다.

“엄마 뱃속에서 6.25 후유증을 겪은 내가 이제 자라서 나도 조국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한 남자가 되었다.”

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사로 임관하고 부대로 배치 받았다. 안산근처의 한 부대였다. 영내에 들어 온 예비군들의 조교가 되어 훈련을 시키기도 하고, 때로 해안 분초장도 되기도 했다.

지금의 인천 남동역과 소래 사이의 염전 둑에서 한국화약을 경계하였다. 기관총과 박격포를 설치하며 경계근무를 했다. 12명의 병사를 거느렸다. 힘도 들었지만 초소생활이 재미도 있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근무를 했다. 오징어 잡이에 익숙한 나로서는 일도 아니다. 저녁에 배식이 끝나고 배치될 때 주는 육군 건빵에 별사탕 먹는 맛도 솔솔하고....

동해안에서 보지 못한 서해안 조수 간만의 차이에 오르내리는 밀물과 썰물.... 지천에 깔린 망둥어도 잡아 먹고, 각종 조개와 어린 고기의 산실인 갯벌의 신비함도, 소금 만드는 염전의 신비도 그 때 체험했다.

군 생활도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정확히 1974년 7월 4일 새벽이었다. 꿈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야! 왜 아직도 자니?”

생시같이 들렸다. 혹시 엄마의 신변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이제 휴가가 얼마 남지 않으니 집 생각이 나서 꿈에 나타나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초소에서 벌떡 일어났다. 3시 45분이었다. 여름이라도 새벽의 마지막 어둠이 미명을 붙잡고 있었다. 아직 어두웠다. 사방을 보아도 보초를 서는 병사들이 없었다. 초소 안에는 전부 코를 골며 곤한 잠에 떨어져 있었다.

“너무 곤해서 자는구나”

생각하고 내 총을 들고 초소 밖을 거닐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대신 경계근무를 하였다.

“이것들을 다 깨워? 비상 걸어? 아니야 몇 분 후면 날이 샐거야. 더 재우고 아침에 문책을 해야지”

한참 지나고 나니 어둠이 가시고 먼동이 트면서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소를 중심으로한 양쪽 염전 뚝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가장 취약한 이 새벽 시간에 근무자가 하나도 없을까? 동초(움직이며 서는 보초) 를 나갔는가? 이런 적은 없었는데....”

곤하게 잠든 막사 안을 보면서 병사들의 숫자를 세었다. 나를 빼고 열한명이 자고 있어야 한다. 세어보니 열명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한명은? 전날 근무를 배치할 때 마지막 새벽시간은 부(副)분대장조에 강 이병과 말년 김 상병일텐데.... 다시 확인하니 김상병은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아예 근무를 나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강 이병이 없었다.

“비상! 비상! 전부 일어나”

하면서 병사들을 깨우고 집합시켰다. 잠결에 일어난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 어수선 했다. 다 세운 병사들에게 번호를 시켰다.

“하나 둘 셋...... 아홉 열”

열명 밖에 없었다. 막내가 없어진 것이다. 나는

“야! 강 이병 못 봤냐?”

전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둑에서 자고 있을지 모르니 찾으라고 했다. 병사들이 두 세명씩 흩어져 찾는다. 그런데 한 병사가 다급하게 들어오면서

“큰일 났습니다. 무기고가 열려져 있습니다.”

“아뿔사”

앞이 캄캄했다. 급히 달려 내려갔다. 진짜 무기고가 열린 것이다. 조사를 해보니 수류탄 2발과 칼빈 실탄 80발이 없어진 것이다. 아무리 바닥까지 조사해도 없어진 것은 확실했다.

강 이병과 소지한 카빈소총 1정과 철모, 실탄 8발과 수류탄.... 앞이 캄캄했다. 설마!

둑의 방카나 혹시 염전 창고에 자고 있을지 모른다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가졌다. 수색하고 온 병사들이 올 때마다 깨졌다. 희망이 물 건너 간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돌던 국방부 시계가 그렇게 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무장탈영’이라는 판단이 내렸다.

급히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소대장은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급히 소대 병력을 끌고 초소로 달려왔다. 무장한 소대원들을 풀었다. 좀 있다가 중대장이 무장한 중대 병력을 끌고 와서 주변을 수색했다. 만에 하나 반항할 것을 대비해서.... 소대장도 애탔고 중대장도 다 애타기는 마찬가지였다. 11시까지 밥도 먹지 못하고 병사들은 주변 산을 뒤졌지만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다.
중대장은 할 수 없이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중대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수포로 돌아가자 늦게 보고했다. 늦게 안 일이지만 보고지연으로 중대장이 징계를 받고 옷을 벗었다.

보고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대대, 사단, 국방부까지 일사천리로 달렸다. 12시쯤 되자 사단에서 헌병대 차들이 먼지를 품으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염라대왕이 오는 것 같았다. 헌병대장이 먼저 내려오고 헌병들이 쏟어져 내려왔다. 분대원 전부를 무장 해제 시키고 차에 주어 담았다. 나에게 와서는

“이 새끼 네가 사고 분대장이냐?”

면서 군화로 무릎을 깠다. 폭 꼬꾸러졌다.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얼마나 세게 찼는지 설 수가 없었다. 자살 방지를 위해서 허리띠 까지 뽑아낸 후 포승줄로 손과 허리를 묶고 차에 태웠다. 끌러 가는 차창으로 보니 가는 곳마다 무장한 군인들이 거리에 서 검문을 하고 있었다.

남의 운명에 나까지 덤으로 딸려 가는 것이다. 아니면 나의 갈길을 위해 남이 사용된 것일까? 한 헌병이 한 말을 잊지 않는다.

“인제 너는 죽었어.... 군대와서 신세 조졌다. 인생 꽝이야 ”

종일 밥도 굶었다. 밥도 주지 않았지만 주어도 먹힐 리가 없겠지만... 사단 헌병대에 붙잡혀온 우리들은 그 시간 이후로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캄캄한 사단 영창에 갇혔다. 불안했다. 우리의 앞길을 누구도 장담 못했다. 불안은 항상 미래가 불확실할 때 일어난다. 쪼그리고 앉은 우리를 한 밀실로 데리고 갔다. 사안이 급박한 많큼 소령 계급을 단 육군 수사관이 직접 다뤘다. 핵심 질문은 아직 잡히지 않은 강 이병이 어디에 있는 것이냐는 것이다.

방법은 한쪽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박달나무 곤봉으로 무조건 때리는 것이다. 개패듯이.... 무식하게.... 엉덩이는 피멍이 들고 왼쪽 어깨는 탈골에 이를 지경이었다. 손이 파르르 떨리고.... 나는 모른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혹시 가혹행위가 있어 탈영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어떤 모종의 계획이 있을지 모른다는 실마리라도 얻으려고 때리는 것이다. 내가 탈영하고 싶은 지경이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심하게 맞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는 그런 고문을 당했다. 이제 후유증으로 나는 한족 팔이 불구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하루 종일 오른쪽 어깨만 맞았으니.... 그러나 강 일병의 행방에 대하여서는 정말 몰랐다. 알면 덜 맞을 것이다. 전 분대원들과 대질 심문했지만 계획하고 작심하고 탈영을 했기에 모르는 것이다.

악몽같은 그날 저녁이 되었다. 왕별 하나를 단 사단장이 직접 감옥에 내려왔다. 얼마 있지 않으면 별 둘을 달아야 한다고 소문이 난 사단장이다. 진급에 지장이 있으니 괘씸죄를 적용하여 친히 국문하러 내려온 것이다. 별만 내려온 것이 아니다. 무궁화(영관급)란 무궁화는 다 내려오고 부하들이 감방을 다 따라 내려와 감방을 채웠다. 우리 분대원들을 일열로 세워놓고 사단장의 권위인 금방망이 지휘봉을 휘둘면서 머리통을 돌아가며 다 갈겼다.

별이 뭔지? 출세가 뭔지? ‘사단장이 병사를 직접 패다’라고 신문에 날 일이지.... 우리에겐 아픔의 별이 튀어 나왔다. 스스로 묻다가 지쳤는지 욕을 퍼부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지 한 지시를 하고 나갔다. 그 무더운 여름에 감방에 인분(똥)을 쳐 넣으라는 것이었다. 별 단 사람 치고 너무 했다. 인성이란 눈꼼 많큼도 없다. 덕(德)장이 아니다. 명은 곧 시행되었다. 좀 있다가 절반 잘린 드럼통이 들어 왔다. 이어 잘 썩은 똥이 부어졌다. 그 냄새가 여름밤 온 감방을 풍겨나갔다.

그 날이 미국에선 독립기념일인데.... 우리는 죄인이라서 그 냄새를 맡아도 될지 모르지만 감옥을 지키는 헌병들의 괴로움은 분노가 되어 우리를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는 빌미가 되었다. 그래야 시간이 잘 지나 가니까....

철장타기. 철장에 발 끝을 걸고 꺼꾸러 매달기, 원숭이 매달리기, 철장 밖으로 뻗은 다리 위로 짓밟는 군화의 횡포, 탱크 체인 감듯이 여러 명을 매질하는 탱크말이....

용어조차 끔찍한 괴롭힘에 당하는 갇힌 자의 설음.... 인간이 이렇게도 악할 수 있구나를 체험하는 악몽같은 날이었다. 다행이 삼일 만에 강 이병이 잡혔다. 산 중턱 포위망 속에서 자기 가슴에 총을 쏘아 자살 미수로 끝이 났다. 잡혀서 국군 통합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이제 난생 처음 겪어보는 재판과 감옥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에 아픈 몸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었다. 근무 나오던 전날 밤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밤에 먹을 간식인 건빵 검사를 하는데 강 이병의 건빵이 다 썩었다. 그래서 내 것을 주었다. 불행한 사고의 전조인가? 또 초소로 나오면서 갯뻘에 기어 나온 수많은 게들을 향하여 돌을 주워 던졌다. 무심코 내가 던진 돌에 애꿎은 게 몇 마리가 죽었다. 오면서 중얼 거렸다.

“재수 없는 놈들 왜 하필이면 거기에 있어서 죽어”

그런데 내가 재수없는 분대장이 된 것이다. 많은 하사들 중에 왜 하필 내가 그 무장 탈영병의 분대장인가? 무언가 큰 어떤 힘에 의하여 운명이 뒤 바뀌어 끌러 가는 것 같았다.

꿈을 꾼 날 좀 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사고를 막지 않았을까?
아니야, 먼저 일어나 마주쳤더라면 그놈 총에 맞아 죽지 않았을까?
더 거슬러 그 전날 아파서 근무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책임은 면했을까?
아니면 일찍 휴가 를 떠났으면 이 일을 겪지 않았을까?
그 전날 강 이병이 급하게 아파서 후송되었다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꺼야?
눈병이 나지 않고, 하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아가 바다에서 죽었더라면 이꼴 저꼴 보지 않았을꺼야?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이 모든 푸념이 사고를 당한 모든 사람들이 현실이라는 굴레를 벗어 나기 위한 공통된 몸부림이라는 것을....
누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 저렇게 지배할까?
나 자신에게 한번도 묻지 않은 질문을 매로 아파 뒤척이던 그날에 하게 되었다.
탈바꿈을 위한 몸부림치는 오징어 인생!
운명의 시계가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옥의 밤은 이런 저런 생각으로 길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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