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배의 추억

뭍으로 오른 오징어 - 군대에서 바뀐 운명(2)

8,099 2012.01.06 21:26

본문


바다에서 고기만 잡아먹던 내가 군에 와서 감옥에 들어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헌병대 영창에서 매일 기합과 인분 냄새의 지독한 공포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험실로 옮기는 날이 왔다. 보름이 지나서 구치소로 갔다. 옮길 때에는 수갑을 차고 손과 몸에 밧줄을 묶었다. 뜨거운 여름날이라도 수갑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차가왔다. 그리고 쇠고랑의 느낌은 이제 이 억압에서 너는 해방할 수 없다는 느낌을 주었다. 병사 10명이 다 수갑을 차고 굴비 엮듯이 묶여서 차에 올랐다. 분대원 전원이 구속된 것이다. 못난 분대장을 만나서 고생을 하는 것인지, 재수 없는 병사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지....

어디를 가는지 한참 끌고 가더니 내리라고 한다. 구치소였다. 들리는 이야기로서는 구치소의 군기와 기합은 영창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한다. 새로운 공포가 엄습했다. 복도로 들어가는데 무슨 일로 잘못되어 들어왔는지 많은 병사, 아니 죄수들이 군복이 아닌 번호를 단 죄수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새로 오는 우리를 철장 사이로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몇 개월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서 드라큐라에게 피를 다 뺏긴 백색이었다. 얼굴에는 눈만 남은 것 같았다. 초췌하고 핏기가 없었으며 째려보는 모습에서

‘이제 새로운 미끼가 굴러 들어왔군! 이제 너희들 혼줄 좀 나 봐라’는 것 같았다.

수갑이 풀리고 포승줄이 풀리는 순간 신고식이 있었다. 신고식은 감방의 헌병들이 주는 이감(移監)기념, 기합과 매 타작이었다. 1시간 이상을 정신없이 구르고 매 맞고 차이고 밟히고... 그리고 감방에 처넣었다. 더 큰 장벽은 그 다음부터였다. 먼저 온 죄수들의 이감 신고식이다. 담요를 뒤집어 씌워 놓고 같은 감방 24명 전부가 짓밟는 시간이었다. 살아야 한다는 마음의 각오는 본능적으로 몸을 최소한 웅크리게 했다. 수없는 발들, 인정사정없는 발과 팔의 뒤꿈치와 킥, 어퍼컷, 사람들의 무게를 실어 내리 누르는 압박.... 혼 줄을 놓아 버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깨어났다. 자리가 배정되었다. 제일 끝자리 똥통이 있는 곳이었다. 아픔이 진하니 똥냄새는 사치였다.

공포의 신고식이 끝이나 안심을 했다. 그러나 진짜 신고식은 그날 저녁이었다. 제일 먼저 온 서열 1번이 감방장인데 감방에 오는 순간 계급을 다 떼었기에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단지 그도 몇 달 전에는 나와 같은 신고식을 치르고 올라 왔으리라... 그러니 복수를 대물림 하는 시간이다. 앞에 부동자세로 앉혀놓고 주먹과 발로 가슴을 때리는 신고식이었다. 30분 이상을 치러야 한다. 30분이 3년 같았다. 가슴에 온 힘과 긴장을 다하고 맞는다. 가슴이 피멍으로 변했다. 70년대 감방은 인권사각지대이다. 누구 탓도 아니다. 끌러온 현실이 야속하다.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헌병들도 그 시간은 묵인한다.

무더운 여름, 한 감방에 24여명의 죄수들이 있기에는 너무나 자리가 좁았다. 3열씩 8명씩 어깨가 닿을 정도로 앉는다. 부동자세로... 몸이라도 기울면 뒷자리에서 발꿈치가 날아온다. 누가 때렸는지도 모른다. 아픔을 흐느끼지도 못한다. 제일 편한 시간은 그래도 주먹 콩밥을 먹을 때이다. 멀건 국에 차라리 파리라도 빠지면 건더기라고 반기겠다. 누가 다 빼 먹었는지.....

잠잘 때에는 24명이 그 좁은 감방에 생선 포개 담듯이 칼잠을 잔다. 한참 자고나면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은 떠올라 사람들 위에 포개진다. 자는 것도 마음대로 못자고, 코도 골지도 못한다. 골았다가는 헌병의 육모방망이가 춤을 춘다.

그렇게 공포와 두려움으로 보내는 날 중에도 기다려지는 것은 재판이다. 결과가 나오면 그 날을 세면서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잇다. 감방 안에서 모의재판도 이루어진다. 시간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 안에서 사연을 듣고 형량을 북치고 장구한다. 그들의 모의재판에서 나는 1년쯤 살거나 집행유예라고 한다. 법에 대해서 전혀 생소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말에 희망을 실었다.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디-데이(D-Day)가 왔다. 또 헌병들이 수갑과 포승줄로 우리를 묶었다. 움직임이 있었다. 재판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법정이 아니라 군용차로 멀리 가는 것 같았다. 한참 덜거덕 거리고 온 후 내렸다. 살펴보니 처음 하사로 부임한 부대 연병장이었다. 수많은 군인들이 모여 있었다. 임시 막사 안에는 군 검찰과 군 판사, 국선 변호사도 있었다. 포승줄에 굴비 엮듯이 내린 분대원들과 나는 죄인석에 꿇어 앉았다.

공개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한마디로 사단장이 교육차원에서 괘씸죄로 병사들의 본보기로 재판을 하는 것이다. 사단장 및 여러 영관급 장교들, 그리고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앉아 있었다. 재판과정을 보기 위해 왔다. 아니 동원됐다. 오늘이면 그 웬쑤를 보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통합병원에서 구멍 뚫린 가슴을 치료 중이라고 한다. 인생의 구멍이 뚫린 사람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군 검사가 죄를 낱낱이 아뢴다. 요지는 군이 정한 규범대로 보초를 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영병이 도망가는 것을 몰라 혼란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가 가혹행위를 해서 도망간 것이 아님은 증명되었다. 분대원들은 보초시간에 잔 것에 대한 죄를 받아야 하고 분대장은 직무를 다하지 못하여 그 책임을 지는 일이다.
또 분대장의 죄목은 강 이병이 어떻게 병기고의 무기를 탈취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언제 병기고의 열쇠를 바꿀 때가 있었다. 분대장인 내가 열쇠 하나만을 가지고 나머지는 보안상 버리게 되어 있었다. 내가 갯벌에 멀리 던져 열쇠를 버리려고 하니 강 이병이 자기가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멀리 더 잘 던진다나... 그래서 나는 보는 앞에서 던지라고 했다. 그 때 열쇠를 버리는 체 하면서 손가락에 사이에 집어넣고 던지는 흉내만 낸 것이다. 타자가 화투장을 감추듯이.... 자기와 엄마를 괴롭힌 의붓 아버지를 죽일 계획으로 그 범행할 날을 위하여 감춰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세상에 누굴 믿어.? 하기사 믿었으니 사건이 생겼지만....

짜여진 각본대로 일사천리로 공개재판이 진행되었다. 검사의 심리에서 병사들에게 물었다.

“왜 보초를 서지 않고 잤느냐”

분대원들은 감방에서 서로 짰는지, 배웠는지 전부 같은 대답이었다.

“분대장이 자라고 해서 잤습니다”

책임을 전부 분대장인 나에게 돌렸다. 기가 막혔다. 군 생활을 가족같은 분위기로 이끌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기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분대장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선고하기 전에 법관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고 묻는다.


병사들은 변명을 했으니까 할 말이 없었다. 나에게 묻기에 나는 속으로 “그래 이 재판은 각본대로 짜여진 것이니 할 말이나 하자” 고 용기를 냈다.

“할 말 있습니다. 사고 책임 분대장으로서 처분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병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 로 생각합니다”

내가 너무 유명한 말을 했나?(착각은 자유.....) 웅성웅성. 재판석도, 구경온 병사들도, 우리를 묶어서 온 헌병들도....

이어 탈영해서 자살미수로 치료중인 강 이병은 결석재판으로 무기징역, 10명의병사들에게는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나는 직무유기 1년간의 형이 선고 되었다. 순간 나는 앞이 캄캄했다.

나는 왜 이리 재수가 없나?
도대체 무슨 죄가 많아 되는 일이 하나도 없냐?

푸념, 원망, 신세한탄.... 그러나 곧 긍정으로 살기로 했다.

“그래 느긋하게 생각하자. 북한은 젊은이들이 10년간이나 군에서 썩는 데..... 인생을 늦게 시작하면 어때... 억울하게 살아도 어차피 바다에서 배 타던 뱃놈, 민초(民草)의 삶이 아니었던가?”

감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병사들은 형기가 상대적으로 짧다고 항소를 포기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 억울하니 집행유예라도 나오려면 고법에 항소하라고 했다. 결과는 어떨지 모르지만 항소했다.

그런데 구치소 안의 분위기가 달랐다. 재판을 참관한 헌병들이 재판을 받고 온 분대원들만 각 방에서 불러내어 구치소 복도에서 보란 듯이 기합을 주고 패고, 괴롭혔다. 나도 복도로 나갔지만 열외였다. 아니 다르게 취급을 했다. 분대원들에게 욕을 하면서

“그래, 이 자식들아 너네만 살겠다고 분대장을 고랑태 먹여. 이 의리없 는 놈들.... 잠을 자라고한 분대장이 어디 있느냐? 이놈들, 너희들에게 배신의 본 떼를 보여 주어야해”

“원산폭격,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손깍지 끼고 포복 앞으로... ”

시간 있을 때마다 괴롭혔다. 종일 땀이 범벅이 되었고 파죽이 되었다. 그런데 나를 불러내서는

“분대장 너는 오늘부터 특별 케이스야! 정말 멋지게 할 말을 잘 했어 너는 책이나 읽고 있어”

나는 열외가 되었다. 우리 분대원들의 말이 괘심도 했지만 괴롬을 당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나는 사람이 적은 다른 감방으로 옮겼다. 거기는 괴롭힘도 없고 뒷줄의 구타도 없었다. 누구 백도 없었다. 감방에서 제일 끝발이 센 헌병들의 비호 아래 “책을 보라”는 명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비 중에 신비였다.

그 방에는 기드온협회에서 배포한 반쪽은 한글 다른 반쪽은 영어로 씌여진 성경책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예수를 믿지 않았다. 단지 성경책을 본 것은 마땅히 다른 읽을거리가 없고 시간이 잘 흘러가라고...., 그리고

‘혹시 대학이라도 가게 될 형편이 되면 영어 단어라도 잊지 말아야지’

영어와 한글을 대조하면서 읽었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라도 명태 눈을 뽑아 먹은 덕을 단단히 보았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내용은 관심이 없었다. ‘설음 받으며 외운 영어 단어의 기억이 아직도 있구나’ 정도였다. 심심하니 영어문장을 외우면서 시간 떼우는 도구로서의 책이었다.

재판을 받았지만 항소를 했기에 아직 미결수였다. 큰 집이라고 하는 남한산성에 있는 육군교도소로 또 이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서는 어떤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매를 맞아 불구가 되던지 죽어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어서 더 두려웠다. 70년대 초의 남한산성, 병자호란의 한이 있어 그렇게 역사적인 곳에 육군 교도소를 지어 공포를 주는가?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이었다.

난데없이 “6273번, 면회!”

구치소로 들어가던 날부터 나의 이름은 반납했다. 없어졌다. 번호가 곧 나였다.

‘아니 누가 날 면회하려 왔는가? 아무도 알지 못할 텐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갇힌 후 처음 철장 밖으로 나갔다. 수감자와 면회자 사이에 철장이 있었다. 말이 새어 나가라고 구멍 뚫린 유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밑에는 반달 모양의 구멍도 있었다. 그 구멍사이로 햄버거 하나가 들어왔다. 배고픈 차에 얼른 받아서 입에 넣고 창으로 보니 엄마와 형과 고모부가 보였고 그들이 밀어 넣은 것이었다.

‘어떻게 알고 속초에서 이 먼 곳까지 왔을까?’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휴가를 온다던 아들이 하도 오지 않자 궁금해서 부대에 연락하니 감옥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고모부를 앞세워 묻고 물어 구치소까지 왔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학교 다닐 때도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고 군대 가서도 한번도 면회없던 엄마가 온 것이다.

입에는 빵을 물고 있었다. 말은 눈물로 대신했다. 엄마도 울고, 형도 울고 있었다. 엄마가 목매인 목소리로 “어쩌다가 이렇게 됐니?” 답을 해야 하는데 빵이 목에 걸려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배고팠으면....

그 날 난생 처음 먹는 햄버거는 눈물로 먹은 빵,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사랑의 빵이었다. 어그적 거리면서 하나를 다 먹고 또 하나 주어서 입에 넣었다. 이것까지 먹고 나면 말하려고 하는데

“면회 끝!”
“아니 벌써.....시간 좀요. 아직 한마디 말도 못했는데요....”

그러나 헌병이 사정을 봐줄 리가 없다. 5분이 쏜살같이 햄버거와 함께 사라졌다. 다시 감방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그렇게 짧은 면회도 있는가? 그렇게 짧았을 줄 알았더라면 빵을 먹지 말 것을.... 올 줄 알았면 면회시간이나 알아두고, 할 말이나 미리 준비하고 있었을 것을..... 감방으로 돌아가면서 울고, 뒤를 바라보면서 울고, 생각하면서 울고....

그 날처럼 울어 본 적도 없다. 그렇게 기막힌 일을 당했어도, 죽을 매를 맞으면서도 강하게 버티며 울지 않았고, 또 않으려 했는데... 그 면회가 뭍으로 오른 오징어의 울음보를 건드렸다.

댓글목록

비아님의 댓글

비아 이름으로 검색 2015.11.11 19:39

아이고, 이런~ 보는 사람도 눈물이나네요~ 그리하여 결론은 어찌되었는지도 궁금하고~